-
우리의 목적은 답사니까. 솔라리스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솔라리스는 몽키아라에 위치한, 말하자면 한인타운 같은 곳이다. 오전에 근처 파빌리온 힐탑 콘도를 괜찮게 둘러본지라, 파빌리온 힐탑에 살게 된다면 주로 생활하게될 솔라리스가 더욱 궁금했다.
아코리스와 솔라리스는 매우 가깝지만, (적어도 무덥고 인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쿠알라룸푸르에서는)걸어올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몽키아라에는 대중교통이 아예 없다시피하지만, 그랩이 있어서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거주하게 된다면 자차가 반드시 필요해보였다.
쿠알라룸푸르에 오기 전에 구글맵으로만 봤던 가게들을 직접 보니 반가웠다. 솔라리스는 온통 한글로된 간판에 한인미 미용실, 마트, 한의원 등 어지간한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있어 외국어가 약한 한국인이 살기에도 불편함이 없어보였다.
교육의 민족답게, 최근 몽키아라에 한인 학원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라고 했다. 최근 이곳에 한달살기를 하러 오는 한국인들이 정말 많은데, 많은 아이들이 한달살기를 와서도 한국학원에 다녔다.
그나마 몽키아라는 다른 지역들에비해 나은 편이라고는 하는데, 쿠알라룸푸르는 제대로된 인도가 잘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의 몇 안되는 단점중에 하나. 더운 나라라 사람들이 걸어다닐 일이 적어서 그런걸까?
솔라리스에서는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한글 간판이었다. 일본인의 비율도 높아서 일식점이나, 일본 식자재 마트도 종종 보인다.
쿠알라룸푸르의 최대 단점이라고 한다면, 아마 저 말도 안되는 도로체계일 것이다. 모든 길이 정말 비효율적으로 얽혀있어서 가까운거리도 한참을 돌아가게 만든다. 나중에 투어 가이드님 덕에 알게된 것은, 영국 식민지시절 마차가 다니던 길을 그냥 넓히기만 한거라서 그렇다고 한다.
쿠알라룸푸르는 도시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인)콘도가 지어지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미 지어진 콘도들에도 공실률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월세의 하락같은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 버블이 터지지 않을까. 아찔한 높이의 고층 콘도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함께 답사를 진행한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공실이 많음에도 왜 여전히 수많은 콘도들이 올라가냐고, 이래도 되는거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오히려 왜 그런 쓸모없는 걱정을 하냐는 반응이었다. 어차피 말레이시안의 자본도 아니고, 대부분 싱가폴이나 중국의 자본에 의해 지어지고 있으며 분양을 받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세입자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상관할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솔라리스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상징적인(?) 분수가 있는데, 그랩을 부를 때 여기로 미팅포인트를 정해서 부르니 편했다.
한국식 베이커리라는 빌라주 베이커리도 이곳에 있었다. 하얏트 하우스 조식에서 아침마다 빵을 너무 먹어서 들러보지는 못했다.
사실, 쿠알라룸푸르까지 와서 한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솔라리스를 둘러보다보니 이곳의 한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들어간 곳은 감자탕 등을 판매하는 '고흥식당' 이었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고, 현지인 스태프가 서빙을 했다.
가게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밖을 바라보니 새마을식당 간판이 보였다. 온통 한글 메뉴에 창밖으로 보이는 한글 간판들까지. 이곳이 비행기를 타고 6시간을 날아와 있는 외국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
한국에 있을 때는 미세먼지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영업하는 식당에는 절대 가지 않곤 했는데. 이곳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이 여기가 쿠알라룸푸르라는 것을 상기하게 했다.
사장님께서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감자탕과 꼬막이라고 하셨는데, 엄마가 김치찜을 먹고 싶다고 해서 김치찜으로 주문을 했다.
한식당답게, 기본적으로 밑반찬이 나온다.
기분을 내려고 소주도 한 병 주문했다. 술이 금기시되는 무슬림 국가답게, 소주 가격은 30링깃(한화 약 9,000원)으로 비싼 편이다.
소주잔도 물컵도 모두가 한국 식당과 똑같아서 여기가 한국인지 말레이시아인지 헷갈릴 지경.
김치찜은 괜찮았다. 다만 좀 많이 짜서 가족 외식보다는 술안주에 적합하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에 한국인 중년 남자분들 테이블에 소주병이 계속해서 쌓여갔다. 역시 술이 돈이 되니까. 사장님이 현명하신ㅁ다.
추가로 해물파전도 주문했다. 엄청 늦게 나오긴 했지만, 맛은 만족. 여기서 살면 적어도 한식 때문에 한국 가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서비스차지 12링깃을 포함해서 가격은 총 132링깃(한화 약 38,000원)이 나왔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말레이시아지만, 한국과 같이 먹고살려면 한국과 크게 물가가 다르지 않다.
근처에 디 앨리(우리나라에서는 '더 앨리'라고 더 많이 부르는 것 같긴 하다)가 있었다. 사실 나는 맨 처음에 예쁜 카페라고만 생각했는데 동생이 우리나라에서 요즘 핫한 흑당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명동같은 번화가나 몇몇 백화점에만 입점해있는 곳이라고.
밥먹고 소화도 시킬 겸 차를 마시러 디 앨리에 가기로 했다.
사실 난 밀크티를 좋아하지만 여긴 흑당이 유명하다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Brown Sugar이라고 써 있는 메뉴 중에서 제일 위에 있는 메뉴로 시켰다. 부모님은 차가운게 싫다고 하셔서 블랙티로 주문했다.
흑당 제품의 인기가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한창인건 아닌듯 줄서서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말레이시아의 20%이상은 중국계라더니, 주문을 받는 점원들이 대부분 중국계였다.
중국어를 하는 동생이 중국말로 주문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옆에 있는 나도 중국어를 할 줄 아는줄 알고 나한테도 계속해서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거다.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데. 중국어를 하는 동생과 해외 여행을 다닐때마다, 얘는 중국말로 했는데 너는 왜 멍청한 표정이야?라는 시선을 받는다. 아니, 피부가 노랗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랑 다닌다고 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건 아니라고요.
테이크아웃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비해 안쪽에 좌석은 조금 한산한 편이다. 문제는, 매장 안쪽에서는 4G가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는거다. 제일 잘 터진다는 맥시스 유심으로 샀는데, 가격도 비쌀뿐만 아니라 공항에서부터 시내까지 종종 속터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것 역시 말레이시안의 느긋함으로 넘어가야겠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부모님이 주문한 티에는 타피오카를 빼달라고 했음에도 타피오카가 들어가있었다. 점원에게 우리가 주문한게 맞냐고 재차 확인하니 우리가 주문한게 맞는데 오더가 잘못 들어갔다면서 바로 다시 만들어주겠다고했다. 주문한게 덜들어간것도 아니고 더 들어간거니까, 그냥 마시기로했다.
그러니까 이게, 소위 말하는 인스타감성이라는거지?
일단 컵은 정말 예뻤다. 맛은 글쎄.. 설탕 잔뜩 들어간 우유 먹는 느낌인데.. 단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냥 그랬다.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밤새면서 먹으면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이제 나한테 그럴 일은 없으니까.
그랩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솔라리스에 위치한 마트인 콜드 스토리지에 들렀다. 꽤 큰 마트로, 역시 논할랄 코너가 있어서 술이나 돼지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키아라163에 있는 자야 그로서에는 손질된 과일이 맘에 드는게 없어서 구입하지 않았는데, 여기엔 꽤 종류가 많고 저렴해서 파인애플과 망고를 구입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과일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마트에서 본 대부분의 과일들이 뉴질랜드, 호주, 태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나중에 들은바로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타 동남아국가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1차 산업에 크게 흥미가 없기 때문이라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잘 손질해둔 망고와 파인애플을 한국돈 6000원 이내에 구입할 수 있다는건 한국인들에게 꽤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족발집에서 족발뼈를 넣어는 것처럼, 망고씨가 하나 들어있긴 했지만, 망고와 파인애플 모두 신선하고 달았다. 양도 하얏트 하우스로 돌아와 야식으로 넷이서 먹다 조금 남을 정도라 충분했다. 여행 기간 중에 다시 솔라리스 근처로 갈 일이 없어서 다시 사먹진 못했지만, 장기간 머무르게 된다면 자주 들렀을듯.
'Travel > 19' Malay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